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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 세운상가에서 길을 찾다 - no.83 (2014년 5월 1일)

윤진 2014. 10. 18.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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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에서 길을 찾다


윤진

그림 이솔




세운상가가 있던 땅은 소개공지가 있던 곳이었다. 공중 폭격으로 쉽게 불에 타는 목조 가옥들의 불길이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중간에 빈 공간을 둔 것이 소개공지였다. 일본이 진주만을 침공해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자 미국은 일본 본토를 폭격했다. 일본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소개공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일본에만 쏟아지던 폭격이 점차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자 서울 곳곳의 건물을 철거해 소개공지를 조성했다. 그 첫번째 장소가 지금의 세운상가가 있던 곳이었다. 폭 50미터, 연장 900미터 정도 되는 길이었다.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시세의 절반 정도를 보상금으로 주고 내보냈다. 해방이 되고 6.25 전쟁이 터졌다. 실향민, 이재민, 피난민, 살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무허가 판자촌을 이루었다. 서울시는 상가 건물이 들어서면 우선 입주 시켜준다 하고는 사람들을 내보냈다. 그래도 나가지 않는 사람들은 쫓아냈다.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김현옥은 별명이 불도저였다. 무엇이든 밀어부치는 사람이었다. 양쪽으로 15미터 도로를 조성하고 가운데 20미터 건물을 지으려는 계획을 수립했지만 번번이 도시계획위원회의 반대에 부딪혔다. 대통령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청와대의 압박도 만만치 않았다. 위원회는 타협안을 내어 건물 양쪽으로 설치되는 15미터 도로 외에 데크를 올려 보도를 설치하도록 했다. 공중보도다. 스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를 맡았다. 1968년 종로에서부터 퇴계로까지 이어지는 획기적인 건축물이 지어졌다. 1층에서 4층까지는 상가였고, 5층 이상은 아파트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었다.


완공된 세운상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서울의 유일한 종합 전자상가로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주거와 상가 모두 몰락의 길을 걸었다. 한강변에 대형 고급 아파트들이 지어지며 세운상가 위에 있는 주거지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또한, 서울의 중심 상권이 명동으로 옮겨가며 활력을 잃고, 87년 용산 전자상가가 지어지며 상인들 가운데 많은 수가 이전하였다. 몰락과 더불어 볼썽 사나운 건물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2013년 동아일보와 건축잡지 SPACE에서 한 조사에서는 해방 이후 최악의 건물 18위로 선정되었다.


쏠 : 18위면 선방했네. 더한 건물들이 많다는 거지?

윤 : 서울시청, 예술의 전당, 세빛둥둥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건물을 철거하고 북악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그린웨이를 회복하자는 여론이 일었다. 서울시에서도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종로에 면한 상가 일부가 철거되어 공원이 됐지만, 다른 곳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남산을 바라본다. 잿빛 콘크리트 길이 남산에 닿는다. 마음 속으로 그려본다. 건물이 나무가 되고, 이 길이 숲길이 되는 그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