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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 강남을 걷는다, 하늘을 만난다 - no.84 (2014년 5월 15일)

윤진 2014. 12. 7. 13:08




Travel - 낭랑로드

강남을 걷는다, 하늘을 만난다


윤진

그림 이솔




강남은 낯설다. 대학을 다닐 때부터 내가 살아온 생활반경은 강북이었고, 친구들을 만나거나 서울을 둘러보기 위해 가는 곳도 주로 강북의 어딘가였다. 어쩌다 한두 번 강남에 가더라도 두더지처럼 지하철역에서 솟아올랐다가 낯선 풍경에 놀라고는 다시 지하철역으로 쏙 들어가곤 했다.


졸업을 앞두고 한 방송국 시사교양 PD를 지원한 적이 있다. 2차는 종합상식과 작문시험었다. 작문주제는 주어진 한 문장을 이어 70분간 2페이지를 작성하는 거였다. 나는 그 한 문장을 보고 두더지처럼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강남역 6번 출구를 나섰다."


그렇게 막막한 글쓰기는 처음이었다.


직장인이 되고, 수원에 살게 된 이후 강남을 지나치거나 강남을 약속 장소로 정할 때가 많아졌다. 심심치 않게 6번 출구 앞을 지나기도 한다. 광활한 강남대로와 넓은 보도는 언제나 차와 사람들로 가득하다. 수많은 오피스 빌딩과 카페, 식당, 술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서울이 지난 70~80년대에 세운 또 다른 서울, 강남은 이제 더이상 새롭지 않다. 그곳은 서울을 지배하는 풍경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뜨거운 돈 바람이 세운' 빌딩들은 대로를 따라 늘어서 압도적인 풍경을 만들어 낸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강남에서 돌아오는 길에 택시기사와 대통령 후보에 대해 논쟁이 붙었다. 택시기사의 논지는 다음과 같았다. 


- 누가 되나 해먹는 건 똑같다.

- 그나마 그동안 해먹은 놈이 덜 해 먹는다.

- 그러니 그동안 많이 해먹은 놈을 뽑아야 한다.


그건 마치 비리 총량제 같았다. 비리에는 총량이 있어 누구나 그만큼 채울 거라는 주장이었다. 나는 떠오르는 대로 지껄였다.


- 누가 되나 해먹을 수 있지만, 덜 해먹는 놈이 있다.

- 많이 해먹고, 조금 해먹고는 성향 차이다. 많이 해먹는 놈들은 계속 많이 해먹고, 조금 해먹는 놈들은 계속 조금 해먹는다.

- 그러니 최소한 잘 할 놈이 아니더라도, 조금 해먹을 놈을 뽑아야 한다.


아마 그 해 그와 내가 선택한 후보는 달랐을 것이다. 그와 나의 사이처럼, 커다란 간극이 강남과 강남이 아닌 지역을 두고 벌어진다.


강남을 걷는다. 강남대로를 따라 어반 하이브와 교보타워가 있는 신논현역에서 강남역으로, 서초대로를 따라 강남역에서 교대역으로 걷는다. 부띠크 모나코 오피스텔과 삼성전자 빌딩이 눈에 들어온다. 높은 빌딩들을 좇다 하늘을 만난다. 하늘의 영역까지 침범한 빌딩들 사이로 파란 하늘이 속살을 드러낸다. 유성을 만난 것처럼 반가운 파란 하늘이었다. 더 해먹고 덜 해먹고가 아니라, 파란 하늘같은 사람 어디 없나? 다시 두더지처럼 지하철역 속으로 들어가기 전, 파란 하늘을 마음껏 본다. 낯선 도시가 조금씩 눈에 익는다.